
[출마의 변]
전국의 의사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강희경입니다.
올 2월까지, 저는 어린이들의 콩팥병에만 관심이 있는 평범한 대학교수였습니다.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이 귀해지고 지역으로 환자를 돌려보낼 의료기관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부가 느닷없이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패키지’를 내놓더군요. 어떻게 가르치나? 무슨 내용이지? 하던 차에, 연이어 발표되는 어처구니없는 업무개시명령, 사직서수리금지 명령 등에 떠밀려 전공의 선생님들이 떠난 후에야 우리 의료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간 우리는 K-의료의 뛰어난 접근성과 건강성과를 자랑해 왔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의 불합리한 의료수가 보상체계, 소신껏 진료할 수 없는 사법 환경, 지역의 소멸과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가 우리 의료를 망가뜨리고 있더군요. 교수 비대위원장으로 여러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미봉책 대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보았지만, 정부의 불통과 뿌리깊은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불신을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전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는 의료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의료계의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를 ‘대표성이 있느냐’고 폄하하며, ‘국민이 원한다’는 핑계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께 급증하는 의료비용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3분 진료의 탈피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의료, 일차-지역의료의 강화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체계라는 것을 홍보하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저는 지난 수개월간 언론 인터뷰, 기자회견, 보도자료 배포, 심포지엄, 토론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 분들을 만나고 대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와 같은 주장을 하던 분들이 대화를 통해 상황을 이해한 후에는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게 되는 감동적인 경험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기회를 진작부터 의협에서 마련해 왔었더라면, 정부가 주장하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근거 없는 의대 증원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대화와 소통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6월, 전공의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소식은 저를 강경투쟁에 나서게 하였습니다. 치열하게 준비하여 전체 휴진을 감행하였지만,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가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환자들의 절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휴진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 국민을 외면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직서가 될 수도, 대화와 소통, 협상이 될 수도, 강경한 투쟁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제가 의료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지 채 일년이 되지 않았지만, 저 강희경은 두려움 없이 어떠한 선택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바로 설 때 얻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저 무지한 정부가 아집을 꺾고 올바른 시스템 개선을 위해 나서도록 하여, 의사와 국민, 정부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명예로운 승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존중과 소통, 연대를 통해 국민과 정부에게 우리 의료의 실상을 알리고, 어떠한 의료체계를 지향하여야 할지 모두의 지혜를 모으며, 이를 위해 다 함께 노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권의 이익에 연연하는 정부와는 달리 의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가, 내 눈 앞의 환자가 회복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우리가 먼저 나서서 근거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국가보건의료계획을 마련하고 이에 기반하여 제대로 된 정책을 제안하여야 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의협이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서는 지금과 다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직역의 의사 회원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는 진정한 우리나라 의사의 대표로 거듭나야 의협이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의협이 힘을 가져야, 지금까지 우리의 대표단체 의협의 영향력이 충분하지 않아 회원 여러분을 괴롭혀 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의협의 회무를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지금까지 의료계에서 활동해 오신, 경험 많으신 여러 회원 여러분들께 도움을 청하여 모든 의사회원을 위한, 회원에 의한, 회원의 의협을 만들겠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의협의 체계를 정비하고, 일차의료기관-지역의료와 상급종합병원이 상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보건의료계획을 마련하여 제시하겠습니다. 기존의 직역별 조직과 회원권익위원회, 의료정책연구소를 강화하고 의학정보원을 설립하여 회원의 국민 기본권익을 보장하고, 동시에 국민께 올바른 의료정보를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의협을 만들겠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함께하여 새로이 거듭난 의협을 만듭시다. 서로 존중하고 연대하여 상생하는 의료계를 만듭시다. 저 강희경,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힘있는 의협을 만들겠습니다.
2024년 12월
대한의사협회장 후보 강희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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