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민의 건강권 쟁취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5-01-02

본문

강희경 前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원장(의협회장 후보 기호 2번)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우리는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보다 정권의 이익을 더 앞세우는 정부를 견디고 있다. 소위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살릴 의료수가 정상화와 폭증하는 보건의료비용을 억제할 의료이용행태의 개선은 외면한 채, 정부는 의대증원 2천명의 주술적인 방안이 '의료개혁'이라며 국민을 호도하였다. 의사들이 아무리 저항하여도 정책결정권자들은 ‘의대정원의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는 것을 이번에는 보여야 한다며, ‘정당한 정책결정’이라며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강희경 교수님

‘정당한 정책’이란 어떠한 것일까? 의료와 같이 한정된 자원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합리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Daniels와 Sabin은 2008년 ‘Accountability for reasonableness (A4R)’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BMJ 2008;337:a1850). 적절성(relevance, 공정한 이들에 의한 적절한 의견), 투명성(transparency/publicity, 공개적인 의사결정과정), 수정가능성(revisability, 상황이 바뀌거나 과거에서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수정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갖춤), 집행(enforcement,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짐). 너무나 당연한, 정당한 정책을 얻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결정과정의 조건들이 아닌가? 의대증원 2천명은 적절성도, 투명성도, 수정가능성도 갖추지 못하고 ‘집행’의 조건만을 갖춘, 따라서 폐기하여 마땅한 정책이다. 이를 ‘정당’하다고 믿고 있는 정부관계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여야 할 것이나, 이를 바랄 수 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왔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2024년 12월 30일 한 일간지에 “의사 수 부족은 분명히 나타난다”고 했다는 A교수는 내년 기준으로 국내 의사 수가 1-2만명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수가 OECD 평균과 비교하여 적은 것이 ‘부족하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여기는 분이 아직도 ‘교수’로서 관련한 의견을 일간지에 내고 있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족하다는 것은 어떤 일이 충분하지 않을 때의 표현이다. 세계 최고의 건강성적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왜 의사 수를 OECD 평균에 맞추어야 하는가? 이분의 주장은 A4R의 첫째 조건, 적절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81.9%의 국민이 ‘의료 취약지와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의사를 충원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는 현실(박희승 더불어 민주당 의원 여론조사, 2024년 12월 19일, 성인남녀 500명 대상)에 직면해 있다. 국민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의료 영역이 존재하나 그것은 의대증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A4R의 첫째 조건인 적절성을 갖춘 우리의 옳은 주장이 집행으로 이어지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이다. 정권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정부와는 달리 의업에 종사하는 우리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의료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요구를 정책결정권자들이 수용하도록 할까? 그간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의 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힘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한 목소리, 단일대오, 실력행사 모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십 년 동안, 최소한 의약분업 이후 우리는 쭉 이렇게 하려고 해오지 않았나?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미래가 바뀌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선택일까?

우리는 12월 3일의 계엄이 국민의 하나된 힘으로 해제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온 국민이 느낀 죽음의 공포가 온 국민의 한 뜻으로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힘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 주장의 ‘적절성’과, 의료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수정 가능성을 요구하는 우리의 외침이 국민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국민이 동의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뜻이 국민의 그것이 되고, 우리의 힘이 계엄을 해제한 저 경이로운 우리 국민의 막강한 힘과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 안 해 본 게 아냐, 저들이 듣지 않았어, 라고 하고 싶으실 것이다. 먼저, ‘의료개혁, 국민이 말하다’라는 책을 보실 기회가 있으셨는지 묻자. 지난 봄, 제대로 된 미래 의사 수 추계를 위한 밑작업으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에서 공모한 ‘국민이 바라는 의료의 모습’ 시민공모의 응모작을 엮은 책이다. 필자는 이 책에 실린 응모작들을 읽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의협회장 선거에 뛰어들어 의사회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오신 선배님들을 만나뵈면서 그 희망은 더욱 뚜렷해졌다. 우리가, 우리 국민이, 우리 의사들이 바라는 우리 의료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이를 무시해 온 것이다. 우리가,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손잡는 데에 실패해 온 것이다. 우리가 이미 갖춘 적절성을, 투명성과 수정가능성을 갖춘 집행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공론화하여 국민이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일 터이다.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이 갖추지 못한 투명성을 갖추고, 수정 가능성을 요구하여 집행으로 이어지게 해야 할 것이다. 가능할까? 다행히, 우리 의료시스템은 이미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8년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2012년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 결정과정에 [건강보험 보장성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해 온 것이 그것이다. 시민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 자원자 2천여명 중 인구학적인 고려를 거쳐 선발된 30여명으로 구성되며, 1박 2일의 충분한 시간동안 한자리에 모여 논의사항에 대해 전문가들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충분한 시간동안 토론하고 숙고한 후 의견을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대중의 결론은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고자 하는 선량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충분한 논의와 숙고를 거쳤기에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보였었던 전문가들도 이들의 결정에 만족하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이 국민참여방식으로 진행된 시민위원회 권고안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우선순위 결정과정에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 이전(2008-2011년)에 매년 반복되던 보장성 확대 항목에 대한 각계의 비난은 사라졌다.

2025 의대정원과 관련한 논의가 더 이상 의미 없게 된 지금,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2024학번과 2025학번에게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는지, 2026학번 이후의 의대정원을 과연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선량한 의료소비자를 우리편으로 만들자. [의대정원 공론화 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의료를 향한 첫걸음을 함께 내딛자. 이것이 우리의 책무인 국민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얻어내는 사회적 합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