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곽재건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강희경 의협회장 후보를 처음 만난 건, 거의 30년 전 의대 입학하고 의대 내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예과 1학년에게는 말 붙이기조차 어려운 본과 졸업반 선배였다. 바쁜 본과 임상 실습 중이나, 나중에 졸업하시고 나서 병원 수련 시절에도 종종 후배들 공연 보러 찾아오셔서 격려도 해 주셨지만, 뒤풀이 자리에서 ‘잘했다’, ‘수고했다’ 칭찬해주시는 여타의 선배들 사이에서 정말 조용하고 냉정한 말투로 후배들의 공연에 대해서 잘잘못을 짚어 주시는 모습은 강희경 선배에 대한 무서운 인상을 꽤 오래가게 했다. 기왕 바쁜 중에 시간 내서 후배들 응원하러 오신 거 칭찬 좀 해주시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무섭긴 했어도 앞서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인사하고 싶은 선배이기는 했다.
마을 성당에서 미사 중 가끔 우연히 선배를 마주쳤을 때 놀라서 인사를 할 때는 너무도 따뜻한 눈빛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셔서 ‘아 그 무서운 선배도 이젠 나이를 먹어가니 덜 무서워지나’ 싶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내가 다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다시 일하게 되어 병원에서 마주쳐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었을 때 너무도 깍듯하게 후배인 내게 존대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얼어붙기도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어 “저한테 왜 그렇게 존대말을 붙이십니까” 여쭙자, 그제서야 웃으시면서 "하일수 교수님이랑 20년 같이 일해 봐요. 저절로 누구에게건 존대말이 입에 붙을걸?" 하셨다. 늘 후배건 선배건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시고 온화하게 대하시던 하일수 교수님의 직계 제자이신 강희경 교수님도 당연히 그런 모습일 거라는 것을 그 전엔 미처 눈치채지 못한 셈이다.
전혀 과학적인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이고 터무니없는 의대 증원 정책을 필두로 한 의료 개악 발표로 인해 의료계에 난리가 나고,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고 의대생들은 휴학을 하고, 병원과 의과대학에서는 교수 비상대책 위원회 (비대위)가 만들어졌다. 강희경 선배께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2기 비대위 부위원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구하는 것과 환자 밖에 모르던 그 조용한 강희경 선배님이? 와, 이 선배 정말 이 사태에 화가 단단히 났구나.’ 싶었다.
서울대 비대위의 방향성이, 올바른 의료 관련 정책 제시와 과학적인 의대 정원에 대한 추계를 제시하는 걸로 나아가는 게 좋겠다는 중지와 함께 2기 비대위 활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비대위 3기가 꾸려졌다. 그리고, 3기 위원장이 되신 강희경 선배께서 전화하셔서,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라는 말씀에 얼떨떨한 상태에서 3기 비대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병원과 의과 대학들의 교수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부의 이 미래에 대해 전혀 준비가 안 된 무리한 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 개악을 막아보고, 또 전공의 후배들의 부재로 인한 의료 공백을 해결해보고자 다방면에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정부는 고집스러운 불통의 자세로 일관하며, 의료계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폭압적이고 의료 전반에 대한 무지한 발언을 일삼았고, 의료 현장, 의대 교육 상황은 나아지는 바 없이 점차 악화되며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고 말았다.
전공의 후배들로 하여금 다시 수련의 현장에 복귀하여 수련을 이어가게 할 환경을 마련하고, 또, 의과 대학생들을 교실에 다시 돌아오게 할 명분을 마련하고, 정부의 어이없는 정책들이 진행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하며 여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법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와중에 방법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른 동료 의료계 사람들에게 숱한 비난과 욕을 먹고 있는 강희경 선배 곁에서, 나는 중환자실 당직에, 응급 수술에, 이런 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일을 많이 돕지 못하여 여전히 부끄러운 지경이다. 그래도 비교적 가까이에서 강희경 선배께서 3기 비대위를 이끄시는 모습을 보고는 여러가지로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격렬한 의견 충돌의 연속이었던 초반의 3기 비대위에서, 강희경 선배는 나이 어린 후배, 혹은 학번이 후배인 그 괄괄하고 저돌적인 비대위원들과의 날이 바짝 선 토론 중에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거의 인격 모독의 수준까지 수위가 높아진 공격적인 말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림 없이 그냥 미소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그렇게 흥분하여 강희경 위원장을 몰아세우던 비대위원들이 오히려 먼저 강희경 위원장에게 “어떻게 강선생님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정말 대인배네요" 하고 말을 꺼내기도 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곁에서 봐왔다. 수만 마디 미사여구보다도, 조용히 동료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며,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폭 넓게 받아들이는 그 수용과 경청의 리더십은 외관상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리더십 보다도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서울대 비대위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많은 의료 농단 주도자들과의 싸움의 길에서, 그 길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또, 진정으로 의료계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장마철의 비처럼 쏟아지는 강희경 위원장 개인에 대한 비난과 욕, 오해와 모함에 대해 눈 하나 꿈쩍 않는 태산같은 진중함과 묵직함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욕을 먹고 오해를 받아도, 이 일은 지금 무척 중요하니 비난은 내가 다 감당하겠다.” 는 강희경 위원장의 이러한 모습에서, 나는 그 때 예과 때 느꼈던 강희경 선배에게 느꼈던 그 ‘무서움이 ‘옳은 바를 위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용기, 꼭 필요할 때는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할 말과 필요한 행동을 하는 강함’ 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강희경 선배는 본인이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에 대해서 진심을 가지고 사과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다수를 위해서 개인적인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과 똑같이, 선배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가 상처를 입거나 힘들어 할 때 그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도 선배 본인의 자존심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즉시 진심으로 다가가 사과하고 깊이 반성하시는 모습들 역시 너무도 인상 깊은 장면 들이었다.
항간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강희경이 저렇게 나서는 건 언젠가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에서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그러는거다’ 라고. 강희경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꽤나 긴 시간 동안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봐 온 나로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강희경 선배가 제일 좋아하고 보람 있어 하는 일 중 하나인 환자 보는 일을, 그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게 하고 싶고, 그래서 환자들이 좀 더 나은 진료를 받게 해주려는 선배의 이 싸움이 끝나면, 강희경 선배는 다시 애기들 콩팥 보는 평범한 한 명의 의사로 돌아갈 사람인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강희경 선배님, 의협 회장 자리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냥 한 병원의 진료과, 그 안에서의 분과장이랍시고 있는데도 어찌나 오만가지 일들이 많고 복잡한 인간 관계가 얽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데, 의사 협회는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선배께서는 의협의 일도,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선배님의 시끌벅적 요란하지는 않으나 속으로 꽉 차고 단단한 진중함과 희생 정신,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말을 깊이 생각하고 포용력 있게 받아들이는 신중함과 관용, 그리고 기꺼이 사과하고 먼저 다가서는 따뜻함이 어우러진 고요하나 깊이 있는 카리스마로 잘 해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의사 직역들을 아우르며 의사와 의사 아닌 국민들을 잘 중재하고, 선배님을 믿고 돕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금은 선배님을 비난하지만, 결국에는 선배님의 진심을 알게 될 사람들 모두와 함께, 지금 바로 우리나라 의료계에 필요한 중요한 일들을 함께 이루어 가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응원합니다.